울산 중구에 사는 A씨(여‧49)는 지난 1992년 남편 B씨와 결혼했다.
A씨는 신혼부터 불행했다. 평소 멀쩡하던 남편은 술만 마시면 괴물로 변했다.
폭언은 물론 폭력을 행사하고 닥치는 대로 던지며 물건을 부쉈다. 남편 B씨는 점점 술에 의지해 살았고 알코올 중독에 이르렀다. 폭력의 강도도 점점 심해졌다.
술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은 하지 못했다. 가정의 생계유지는 오로지 아내의 몫이었다. 그런데도 A씨는 남편과 자식들, 시댁에도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 했다.
2006년 B씨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았지만 쉽게 치료 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B씨에게 알코올 중독과 가정폭력을 바로잡기 위해 간절한 편지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남편의 오랜 가정폭력은 A씨 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치며 가족 모두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두 아들은 정신과에서 심리 상담을 받기도 했다.
남편 B씨의 주사와 폭력은 자제도 통제도 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남편이 무슨 짓을 할 지 몰라 A씨는 한때 집안에 있던 칼을 모두 베란다에 숨기기도 했다.
지난 2018년 1월30일 A씨는 동생 집에서 있다가 늦게 들어왔다. 그러자 B씨는 “너도, 동생도 다 죽이겠다”며 흉기로 위협했다. A씨는 "죽으려면 가족들 괴롭히지 말고 혼자 죽으라"고 맞대응했다.
B씨는 "알았다. 내가 죽겠다"며 흉기를 A씨에게 건넨 뒤 그대로 달려들었다. A씨는 이를 피하다 우발적으로 B씨의 복부를 찔렀다. B씨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3시간 뒤 과다출혈로 숨졌다.
경찰은 A씨를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A씨가 남편을 살해할 의도까지는 없었다고 판단해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A씨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법원은 A씨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석방했다.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이 침해되는 범죄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엄벌로 다스려야 하지만, 부부 사이의 범행은 구체적인 사정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가족의 간절한 희망에도 피해자의 주취폭력을 멈추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강도가 세졌다"며 "피해자 유족이 선처를 탄원하고, 피고인이 구금 기간 내내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을 집행유예로 석방하는 결정은 결코 피해자의 생명을 가볍게 보거나 사건의 주된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음을 들춰내기 보다는 피해자를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한 알코올 중독의 심각성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평범한 가정조차 개인의 음주 문제로 비극적 결과에 이른 데 대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지 돌아볼 필요성에 있다"고 판시했다.
A씨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27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것을 참작한 것이다.
또한 B씨의 어머니와 형제 등이 선처를 당부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것도 작용했다.
B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평소 술을 자주 마신 뒤 가족을 힘들게 했지만, 며느리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이를 참아냈고, 시댁 식구에게도 최선을 다했다”며 “두 자녀에게도 엄마가 꼭 필요하니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알코올 중독에 의한 가정폭력은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고통 속에 내몰고 있다. 재판부도 “유사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알코올 중독과 가정 폭력 근절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MOG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