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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에 사는 유호철씨(31)는 1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씨는 2017년 간호조무사인 박아무개씨(32)를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해 9월에는 박씨를 집으로 데려와 가족에게 “결혼할 사이”라고 소개했다.
이후 박씨는 유씨의 가족 행사에 참석하며 한 가족처럼 지냈다.
2018년 10월20일 저녁 유씨는 “여자친구 박씨와 저녁을 먹고 오겠다”며 추리닝에 슬리퍼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유씨는 이날 저녁 집에 귀가하지 않았다.
다음날인 21일 오전 11시30분쯤 119구조대에는 말 없는 7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112에는 어느 호텔 몇 호라는 문자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유씨와 함께 모텔에 투숙했던 박씨였다.
119구조대와 경찰이 해당 모텔로 출동해 보니 유씨와 박씨가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었다. 유씨는 이미 숨져 있었고, 박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유씨의 오른 팔에는 두 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있었다. 현장에는 두 사람이 함께 약물을 투약한 것으로 보이는 링거와 수많은 약물 병이 흩어져 있었고 곳곳에 핏자국도 있었다.
모텔 방에 함께 있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살았고, 다른 한 사람은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박씨는 급히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유씨의 시신은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박씨는 병원으로 옮겨지고 나서도 죽겠다고 난동을 부렸다.
부검결과 유씨의 체내에서 마취제인 프로포폴과 리도카인, 소염진통제인 디클로페낙이 치사량 이상 검출됐다. 사망원인은 소염진통제인 디클로페낙으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디클로페낙은 심근경색증과 뇌졸중 위험을 높이는 약물이다.
박씨에게는 약물검사 결과 치료농도 이하의 약물이 검출됐다. 박씨는 유씨와 함께 약물을 투여했다고 진술했으나 그의 몸에서 검출된 약물은 일반적으로 치료시 필요한 양보다 적었다. 유씨에게는 치사량 이상의 약물을 투약했으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치료 농도 이하를 사용했던 것이다.
박씨는 경찰에서 “유씨가 ‘금전적으로 힘들다’며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 너무 사랑해서 사건 일주일 전, 동반 자살을 약속하고 사전에 의약품을 준비해 실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도 자살하려고 독성농도가 높은 링거를 투약했지만 바늘이 빠졌고, 호철씨는 죽어 있었다. 다시 죽으려고 챙겨온 약물을 추가로 투약했으나 정신을 잃었다가 되찾았다가를 반복하다 신고했다”고 말했다.
박씨가 사용한 약물 등은 2016년 8월쯤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서 훔쳐왔다. 그는 유씨를 만나기 전에 프로포폴, 디클로페낙, 마취제, 진통제, 항생제, 주사기 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해당 병원은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 폐업했다.
그런데 박씨의 말과 행동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먼저 유씨는 자살할 이유가 불분명했다. 극단적 선택에 대한 사전 징후가 없었다. 현장에서는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동반자살을 일주일간 계획했다는 두 사람의 통화와 문자, 메신저 등에서는 어떠한 자살 징후도 없었다. 서로 이와 관련해 논의한 내용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박씨가 사인으로 말한 ‘금전적 어려움’도 사실과 달랐다. 유족에 따르면 유씨는 3년 전 실수로 빚을 진 것은 사실이다. 유씨는 혼자 해결하려고 부업까지 했으나 금융업에 종사하는 누나의 도움을 받아 개인회생 절차를 밟았다.
유씨는 이를 통해 안정을 찾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아버지 밑에서 1년 넘게 일을 배웠다. 또 아버지에게 받은 월급으로 정해진 채무도 꼬박꼬박 변제하고 있었다.
더욱이 유씨는 숨지기 3일 전 해당 자격증을 취득해 무엇보다 일에 열정을 보였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박씨가 말한 “금전적으로 힘들어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했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반박한다.
유씨의 누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려 박씨에 의한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유씨의 친구와 지인들도 한결같이 “호철이는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박씨는 유씨와 가족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박씨는 간호사가 아닌 ‘간호조무사’였고, 그가 다니던 병원도 폐업해 실직 상태였다.
박씨는 또 "호철씨를 죽도록 사랑해서 함께 죽을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에게는 오래전부터 만나던 동거남이 있었다. 유씨를 만나는 중에도 다른 남자와 동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유씨 가족은 “동거남은 상상도 못 했다. 결혼할 사람으로 우리 집에 왔고, 동생도 그 집에 결혼한다고 한우를 보내기도 했었다”며 충격을 받았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유씨와 박씨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유씨는 주변 친구들에게 “여자친구의 지나친 집착으로 힘들다”며 “여자친구를 당분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했다.
박씨는 또 평소 “피로 해소에 좋다”며 약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약하고 유씨의 친구들에게도 권했다고 한다.
사건이 있기 전날 박씨가 자신의 지인에게 “유씨가 외도를 하는 것 같아서 혼을 내줄 것"이라고 말한 것이 경찰 추가 수사로 밝혀졌다. 유씨의 휴대전화에서 13만원이 이체된 것을 보고 유흥업소에 출입한 것으로 의심, 심한 배신감을 느꼈던 것이다.
경찰은 박씨가 유씨를 속여 치사량 이상의 약물을 투약하고 자신에게는 치료농도 이하의 약물만 주사한 것으로 보고 위계승낙살인 혐의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위계 등에 의한 촉탁살인죄는 타인의 승낙을 전제로 타인을 살해한 경우에 적용되는 형법이다. 법정 선고 형량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이다. 일반 살인죄의 경우 법정 선고 형량이 징역 5년에서 최대 사형까지 선고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보강수사를 벌인 검찰은 유씨와 박씨가 동시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살인죄를 적용해 박씨를 재판에 넘겼다. 박씨는 재판과정에서 일관되게 살인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박씨의 살인 혐의를 인정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씨는 자신의 의학지식을 이용해 피해자를 죽인 뒤 자신도 약물을 복용해 동반자살로 위장했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항소했으나 2심에서도 같은 판단을 내렸고, 대법원도 원심을 인용하면서 형이 확정됐다.■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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