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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12월4일 목요일 오후 1시3분쯤, 임 아무개씨(46)는 수원시 팔달구 고등동 경기도청 뒤편 팔달산에 올랐다.
등산로를 걷고 있던 임씨의 눈에 대형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봉지는 약간 열려있었고, 그 밖으로 내용물 일부가 빠져나온 것이 보였다. 임씨는 가까이 다가가 봉지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기겁했다. 머리와 팔이 없는 사람의 상반신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임씨는 휴대전화로 112에 신고했고, 경찰 과학수사반이 도착해 비닐봉지안의 시신을 자세히 살펴보니 머리와 팔, 다리 등 하반신이 없는 상태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뼈는 있었으나 콩팥을 제외한 장기가 모두 사라진 채였다. 양쪽 가슴에 일부 손상 흔적도 발견됐다. 시신은 좌우로 접혀진 형태로 얼어 있었다.
팔, 다리 등이 몸통에서 떨어진 것은 칼 등 정밀한 흉기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상태가 단순 살인사건이 아니라고 보고 경기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경기청은 시신에 남은 혈흔을 채취해 혈액형이 A형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시신의 성별과 나이, 사망 시기 등을 알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부검을 의뢰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시신 근육과 골편에서 DNA를 검출하는데 성공했지만, 피해자가 사춘기가 지난 여성이라는 것과 혈액형 외에는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피해 여성의 정확한 연령과 사망원인, 사망시각 등을 알아내지 못했다.
다만, 몸에 멍자국 등이 없어 숨진 이후에 시신훼손이 이뤄진 것으로 판단했고, 시신에 남아있는 신장조직에서 독극물 등이 검출되지 않아 독살 가능성은 배제했다.
경찰은 사건의 실마리가 될 만한 단서들을 추가로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시신이 발견된 주변 지역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확보해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다. 팔달산 내 산책로에는 CCTV가 전무한데다 시신이 유기된 장소로 이어진 진입로가 10여 곳에 달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일단 경찰은 인근 25개소의 수원시와 민간인 소유 CCTV 영상 10일치를 확보해 분석했다. 실날같은 희망을 걸었던 CCTV도 수사에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경찰은 사건의 유일한 단서인 시신이 담겨 있던 검은 비닐봉지와, 그 안에 있던 목장갑의 출처 등을 조사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그리고 비닐봉지와 목장갑에서 채취된 혈흔이 토막시신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수색 인력을 늘려 수색 범위는 팔달산에서 수원 전역을 포함한 인접지역까지 확대했다. 또 탐문 대상을 경기도 전역과 전국으로 확대했다. 경찰은 12월8일까지 팔달산과 주택가 일대 수색에서 수거한 신발, 옷 등 272점에 대해 사건 연관성을 검토했으나, 대부분 사건과 무관했다.
이번에는 실종자 등과의 DNA 대조에 희망을 걸었다. 경찰은 전국의 실종 및 가출여성과 피해자의 DNA를 대조 분석했으나 이것마저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경기도내 미귀가자 가족들의 DNA를 채취해 국과수에서 토막시신 DNA와 대조과정도 거쳤다.
당시 경찰에서 파악한 전국 30세 이하 여성 미귀가자는 1442명이며, 이중 44명(경기 18명 포함)의 DNA를 확보했다.
이들과 토막시신의 DNA를 일일이 대조했지만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만약 시신의 DNA가 경찰 혹은 법무부 등 관계기관에 등록되지 않은 DNA일 경우 신원 특정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경찰 수사가 첩첩산중일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인근지역의 수색에 나섰다. 병력 200여명과 수색견 4마리를 동원해 팔달산 주변 주택가 등을 집중 수색했다.
그리고 시신 발견 1주일 만인 12일 오전 11시42분쯤, 수원시 매교동 수원천 매세교와 세천교 사이 둑방 옆 관목과 잡초 덤불 사이에서 토막시신 일부와 여성 속옷이 들어있는 검은색 비닐봉지 4개를 발견했다. 그 주변을 수색해 추가로 비닐봉지 2개를 더 확보했다.
비닐봉지는 제방 나뭇가지에 숨겨져 있었고, 시신이 발견된 팔달산에서 직선거리로 1.2km 정도에 있는 곳이다. 또 100m 근방 4곳에 각기 흩어져 있었다.
사람의 혈액이 맞는지 인혈 간이 검사를 해보니 ‘양성 반응’이 나왔다. 경찰은 팔달산에서 발견된 시신과 동일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과수에 보내 분석을 의뢰했고, 감식결과 이전에 발견된 토막시신 피해자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시신 발견이후 피해자의 신원파악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하지만 성과물은 빈약했다. 피해자나 용의자를 추정할만한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고육치책을 썼다. 사건 관련 중요 제보자에게 최고 5000만 원을 주겠다는 신고포상금을 내걸었다. 경기도경 수사본부는 도내 41개 경찰서에 전담팀도 구성했다. 피의자를 검거하는 경찰관에게는 1계급 특진도 내걸었다.
자칫 미궁으로 빠질 뻔 했던 사건이 급물살을 탄 것은 한 시민의 제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경찰은 11월 하순쯤 월세방 가계약을 한 박춘풍(55‧중국동포)이 보름가량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한 주민의 제보를 받고 출동했고, 방 내부를 감식해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인혈 반응을 찾아냈다. 또 방 안에서는 토막시신을 담을 때 사용한 비닐봉투도 발견했다. 경찰은 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추적에 나섰다.
박춘풍의 월세방은 팔달구 교동에 위치한 3층짜리 다가구 주택 1층으로, 최초 토막시신이 발견된 팔달산 등산로와 직선거리로 약 1.1㎞ 떨어져 있었다. 살점이 담긴 비닐봉지 6개가 발견된 수원천 둑과도 400여m 거리다.
박씨는 보증금 200만원, 월세 27만원 짜리 매물로 나온 이 방을 부동산을 통해 현금 20만원을 주고 가계약 했다. 집주인은 가계약을 맺으면서 열쇠를 건넸다. 잔금을 치르고 입주하기로 한 12월10일, 박춘풍은 나타나지 않았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집주인과 부동산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경찰은 박씨의 인적사항을 파악한 후 탐문에 나섰다.
그리고 팔달구의 한 치과 CCTV에서 영어 이니셜이 새겨진 야구모자를 쓴 박춘풍의 모습을 확인했다. 경찰은 또 박씨가 동생의 휴대전화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위치추적에 나섰다. 그리고 박씨가 수원역 주변에 있는 것을 파악하고는 이 지역을 집중 탐문했다.
11일 오후 11시30분쯤 박씨는 한 여성과 함께 수원 고등동의 한 모텔에 투숙하려다 잠복해있던 경찰에 검거됐다.
피해자는 박춘풍과 동거했던 김아무개씨(48)였다.
박씨가 검거되기 3일 전인 8일 오후 김씨의 언니는 파출소를 찾아 “동생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며 가출신고를 했다. 경찰은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음날 김씨 언니의 DNA를 채취해 국과수로 보냈다. 결과는 팔달산에서 발견된 토막 시신의 DNA와 일치했다.
박씨는 순순히 범행을 시인하지 않았다. 횡설수설하다가 불리한 진술에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러다 경찰이 월세방에서 나온 혈흔 반응 등 증거를 차례로 들이대자 그때서야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범행을 시인했다. 박씨는 우발적 범행임을 강조했다. 그는 “김씨를 밀었는데 벽에 부딪치면서 넘어져 사망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박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국과수는 김씨가 목이 졸려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내놨다. 또 김씨를 죽이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반지하 월세방을 계약할 당시 박씨는 본인의 신분을 철저히 숨겼다. 계약서에 이름도 적지 않은 채 휴대전화 번호만 기재했다. 휴대전화 번호도 다른 사람의 명의였고, 며칠 뒤 해지해버렸다.
박씨는 동거녀 김씨를 살해한 날 오후 거주지 인근에 월세방을 가계약했다. 시신을 훼손하기 쉽도록 화장실이 넓은 곳을 찾아 단번에 가계약 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실제 머물 장소로는 수원역 인근의 여인숙을 마련했다.
월세방은 시신을 훼손하는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계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씨는 김씨를 살해한 후 이전 주거지에서 1차로 훼손했다. 그런 다음 가계약한 반지하방으로 옮겨 나머지를 훼손한 후 총 11개의 비닐봉지에 담아 팔달산 등 5곳에 유기했다.
본인 소유 차량이나 운전면허가 없었기 때문에 시신을 유기하기 쉽도록 훼손한 것이다. 박씨는 시신을 유기할 때 주로 도보를 이용했으며, 오목천동 야산에 머리 등을 유기할 때는 2차례 택시를 탔다.
@SBS뉴스화면 캡처
경찰 조사결과 박춘풍은 사건이 발생한 그해 4월부터 김씨와 동거했다. 그러다 김씨가 박씨와 싸운 뒤 짐을 싸서 집을 나가 만나주지 않자 앙심을 품고 범행에 나섰다. 동거생활을 하면서 둘은 생활비 지원 등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도 자주 다퉜다.
경찰은 범행의 잔인성 등을 감안해 박씨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다. 박씨에게는 살인 및 사체손괴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1심 재판부는 박씨를 ‘싸이코패스로 진단해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에 박씨의 국선변호인은 1심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박씨는 어릴 때 사고로 오른 눈을 다쳐 의안을 하고 있다. 이것이 뇌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에선 이런 박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법사상 처음으로 범죄자의 뇌 영상 촬영과 사이코패스 검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검사 결과에서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이 나오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범행의 잔혹성과 엽기성, 무기징역이라는 형이 갖는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1심의 형을 너무 중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역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16년 4월15일 대법원은 박씨의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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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풍은 2008년 12월2일 ‘박철’이라는 가명으로 여권을 위조해 입국한 불법체류자였다. 국내에서도 ‘박00’ ‘정00’ 등 여러 개의 가명을 사용했다. 1차 토막난 시신이 발견된 팔달산은 2012년 4월 오원춘 토막살인 사건이 일어난 곳과 직선거리로 1km에 불과했다.
토막난 시신에 콩팥을 제외한 장기가 없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장기밀매’ 범죄 가능성이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장기밀매’나 ‘인육캡슐 활용’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장기밀매와 연관성이 미미하다는 근거는 장기를 적출하기 위해선 심장이 뛰고 있는 상태에서 좌우 갈비뼈를 연결하는 가슴 중앙에 있는 흉골을 절개해야 하는데, 시신에는 절개 흔적이 없다는 국과수 부검의의 소견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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