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우리나라 언론의 통계를 어느 정도 믿고 계십니까?
이걸 알면 깜짝 놀랄 것 같은데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은 이제 상징적인 의미의 형벌이 됐습니다. 1997년 12월 이후 사형 집행이 멈춘 이후 19년째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사형이 집행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 폐지국가’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면 국내 생존 사형수는 몇 명이나 될까요?
지난 2월 19일 대법원은 임아무개 병장에게 사형을 확정했습니다. 그는 2014년 6월21일 강원 고성군 육군 22사단 일반전초(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부상을 입혔는데요. 이로써 임 병장은 4번째 군 사형수이자 국내 최연소 사형수가 됐습니다.
임 병장의 사형이 확정된 이날 국내 언론은 일제히 주요 뉴스로 보도했습니다. 언론사의 관련 기사가 포털사이트의 메인화면을 장식했습니다.
통신사인 <연합뉴스>는 “육군 22사단 일반전초(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한 임모(24) 병장에게 대법원이 사형을 선고했다. 임 병장은 확정 판결을 받고 집행 대기 중인 61번째 사형수가 됐다.” “법무부와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판결이 확정된 사형수는 민간인 57명, 군인은 임 병장까지 4명이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다른 언론보도도 판박이였는데요.
과연 이게 맞을까요?
필자는 최근 <시사저널>에 국내 사형수를 집중 조명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기사를 준비하면서 기존 보도된 언론사의 뉴스도 참고하려 했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도저히 숫자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임 병장 이전에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는 헤어진 여자 친구의 부모를 무참히 살해한 장아무개씨입니다.
지난해 8월29일 대법원은 장씨에 대해 사형을 확정했는데요. 언론사들은 이때도 국내 사형수의 숫자가 61명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민영통신사인 <뉴스1>은 “28일 법무부과 국방부에 따르면 2015년 8월 현재 사형이 확정된 뒤 집행되지 않은 생존 사형수는 장씨를 포함해 61명에 이른다”고 보도했습니다.
장씨가 61번째 사형수라면, 임 병장의 사형이 확정됐으니 언론사의 셈법으로도 ‘62명’이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사이 교도소에서 사망한 사형수가 있었는지 확인해 봤지만 없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사망한 사형수는 임병장의 사형이 확정되기 전인 지난해 3월 지병으로 숨진 상습 강간 살인범 오수현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씨는 생존 사형수 숫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인데요.
필자는 언론사가 보도한 국내 사형수(군 사형수 포함) ‘61명’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교정본부에 전화를 했으나 법무부 대변인실을 통했으면 좋겠다는 말에 법무부 대변인실에 전화를 걸어서야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군 사형수를 뺀 일반인 사형수는 61명이다”라는 공식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사형이 확정된 국내 사형수는 일반인 사형수 61명, 군 사형수 4명을 포함해 총 65명입니다. “군 사형수 포함 국내 사형수가 61명이다”라는 언론사의 통계와 보도는 모두 오보이며, 결과적으로 엉터리였던 것입니다. 최근 필자가 <시사저널>에 쓴 사형수 통계는 '65명'으로 정확하게 표기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61명’이라고 보도한 언론사의 숫자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심지어 “법무부와 국방부에 따르면…”이라며 출처까지 밝혔는데요. 이건 확인하지 않고 썼기 때문입니다. 한 번 만 확인하면 될 것인데, 누구도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과연 사형수 숫자만 그런 것일까요? 갈수록 취재 현장과 멀어지고, 치밀하고 정확한 취재를 멀리하는 언론,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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